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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 - 나는 곧 죽는다, 살해당할 것이다
  • 기사등록 2015-12-18 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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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죽는다, 살해당할 것이다. 빠르면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쯤 사람들이 내 시신을 발견하겠지. 그 전에 나는 나를 죽이려는 자, 아니, 나를 죽이려는 ‘그것’에 대해 최대한 흔적을 남기려 한다. 그것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나를 살해할 것이 분명했기에! 지금 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지만, 차분하고도 침착하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자는 나의 사연을 밝혀주기를 부탁한다.

그것을 처음 만난 것은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광고를 통해서였다.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현란한 광고들 틈바구니 중 유독 눈에 띄지 않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엔 어설픈 광고였다. 하얀 바탕에 검은색의 문장 네 줄이 다였다. 글자 포인트도 작아 눈을 찌푸려야만 읽을 수 있었다.


‘당신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드립니다. 시제품 테스터를 모집합니다. 3개월 동안 테스터를 하시면 사례금을 드립니다. 070-○○○○-○○○○’


대체 무얼 테스트 한다는 거지, 게다가 사례금까지?


여러 생각이 교차했고, 호기심이 일었다.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움직이는 듯 했다. 그 전화 한 통화로 내 죽음은 결정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날 오후, 우리집엔 하우스키퍼(House Keeper)가 설치되었다. 변기에 앉아 오줌을 싸는 것 마냥 너무 쉬웠다.


여기서 잠깐, 이 글을 읽는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우스키퍼에 대해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다.

하우스키퍼란 집을 관리해주는 5세대 인공지능시스템으로, 집 곳곳에 장착된 카메라와 열 감지, 음성인식 등 각종 센서로 가족의 일상을 데이터화해, 생활 패턴을 분석한다. 가족의 생활패턴에 맞춰 집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전등의 밝기, 청소, 빨래, 다림질, 가구의 상태 체크, 침대시트 교체 시기, 집안 공기 중 미세먼지의 정도, 집 먼지 진드기 등의 발생 여부 체크, 샤워 물의 온도 컨트롤은 기본이고, 가족의 일정까지 체크할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게다가 기존에 사용하던 컴퓨터나 가전기기와도 연동이 가능하고 가족의 개인 메일이나 가계부, 일정 등도 설정만 해놓으면 자동으로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 바이러스 같은 것들도 자동으로 차단해준다. 원한다면 자동차 네비게이션과도 연동이 되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시내 교통 상황은 어떤지 등도 미리 확인해, 몇 시에 출발하면 좋을지, 어느 경로로 가면 좋을지도 알려준다. 차의 연비, 주유 시기, 차량의 타이어 공기압 확인 및 엔진오일 교체 시기 등 간단한 차량 점검 시기도 모두 체크해서, 가족들의 일정에 맞춰 알아서 자동차 정비 업체에 예약까지 해줄 정도다.


한마디로 비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게다가 테스터 중이라, 수시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는데 그때마다 스스로 업데이트가 되어, 새로운 기능으로 가족을 보살핀다. 최근에 업데이트 된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은 하우스키퍼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확인해 알아서 식단을 선정하기도 하고, 식재료가 떨어지면 알아서 인터넷으로 장을 봐주기도 한다. 그것도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선정해 필요한 식재료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최첨단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시제품을 설치하러 온 사람들 중 한 명이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현재 내가 사용하는 핸드폰보다 좀 더 큰 사이즈의 스마트폰을 주었다. 하우스키퍼 전용 스마트폰이라던가. 집에 대한 모든 정보가 그 작은 휴대폰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그것으로 하우스키퍼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있는 종이, 종이책, 펜, 유선전화, 핸드폰 등을 모두 수거해갔다. 테스트 기간이 끝나는 3개월 후에 돌려주겠다면서. 대신 다른 가족의 핸드폰에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달라고 당부했다. 단, 어플리케이션으로는 하우스키퍼를 컨트롤할 수 없고 상태만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그 외 기존 가전기기에는 하우스키퍼와 연동이 되도록 무언가 작은 칩 같은 것을 설치해주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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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gahee802015-12-23 19:03:48

    블로그 타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꽤 흥미로운 글귀가 보여 저도 모르게 클릭.
    가족의 모든 식생활을 편리하게 지켜주던 하우스 키퍼가 어떻게 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는건지 궁금하네요. 재밌어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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