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기사는 설명 끝에 이런 말도 했었다.
“영화나 만화에서 봤던 일이 현실이 되는 겁니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주로 로봇이 움직이며 집안일을 하지만, 실용화될 로봇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주 유용할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실용화될 로봇이 나오려면 아직도 몇 십 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또 그게 가정에서 사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뭐, 돈 많은 부자들은 로봇이 나오면 구입하면 되겠지만, 월급쟁이 일반 서민들이 마음대로 사려면 얼마나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아마 적정 가격으로 일반 가정에까지 보급되려면 또 다시 몇 년 기다려야 할 걸요. 저희 회사에서는 틈새시장을 겨냥한 제품으로 하우스키퍼를 개발한 겁니다. 아직 시제품이지만, 하우스키퍼는 일반 가정에서 로봇을 사용하기 전까지 저렴하게 운용할 수 있는 과도기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죠. 보일러 원격 제어 제품 같은 허접한 프로그램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퀄리티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죠. 보셨죠? 그 광고. 고작 보일러 하나 원격 제어하는 비용이 얼만지나 아세요? 아주 날도둑놈들이에요. 대기업이라고 그렇게 소비자를 우롱하면 안 되죠. 그에 비하면 우리 회사 하우스키퍼는 거져죠. 게다가 하우스키퍼는 가족의 편리함을 넘어서 행복을 추구합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요술램프라고 할 수 있죠.”
아주 장황한 제품 광고였다. 결국은 자기네 제품이 타 제품에 비해 혁신적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행복이라니. 그의 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고작 기계 따위가 복잡 미묘한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만들어준단 말인가. 나 스스로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모르는데. 진짜 요술램프 지니가 아니면 몰라도.
과장된 그들의 포장에 오히려 그들이 딱했다. 저들도 어쩔 수 없으리라. 대기업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이상한 사회에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작은 회사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과장광고는 필연적이랄까.
광고야 어쨌든 하우스키퍼 덕에 생활은 무척 편해졌다. 아주 훌륭한 가사도우미였다. 물론, 실제로 움직이는 건 나였지만. 나는 무시로 하우스키퍼 전용 휴대폰의 지시에 따라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으며 그것이 추천해주는 조리 방법으로 요리를 했다. 심지어 그것이 제안하는 일정을 따르기도 했다. 덕분에 내 업무 효율이 높아지기까지 했다.
이정도면 하우스키퍼가 무엇인지, 대략 알 터. 이제 하우스키퍼가 왜 나를 죽이려는지 적겠다. 하우스키퍼가 이 글을 발견하기 전에 빨리 써야 되서 시간은 없지만, 되도록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처음엔 마냥 편했다. 소설가인 나에게 하우스키퍼는 점차 신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하우스키퍼가 설치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느닷없이 여러 건의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대부분 내가 원고를 실었으면 했던, 선망했던 문학지들이었다. 알 수 없는 영문이었지만 그들이 먼저 내게 연락을 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쉽게도 나는 그중에서 한두 건만 승낙해야 했다. 모두 마감일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내게 들어온 원고 청탁들 모두 급하게 펑크 난 땜빵용 청탁들이었다. 그것들도 어쩌면 하우스키퍼의 농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억측일지라도, 나를 죽이려는 마지막 카드까지 뽑아든 그것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주류인 문학지와 신문사에서 유명하지도 않고 영향력도 없는 나에게 연락할 리 만무하니까.
내가 고민하며 시간을 끌던 중, 하우스키퍼가 몇몇 문학지의 최근 동향과 문단의 위치, 대중들의 인기를 총망라한 데이터를 업로드해주었다. 소위 잘나가는 곳들을 선별해준 것이다. 고민이 해결되었다. 무엇을 승낙해야 할 지 판단이 섰다. 당시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여겼다. 설마 그 데이터를 하우스키퍼가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언론사나 출판계의 누군가가 정리한 것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날도둑놈들이 많긴 하죠. 저는 저 직원에게 감정이입을..ㅋㅋㅋㅋㅋ 앞으로의 이야기도 계속 기대할게요~^-^
잘 읽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