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_03 - 서울을 헤매는 앨리스
  • 기사등록 2015-12-24 15:30:33
기사수정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하우스키퍼는 내가 그동안 출간했던 에세이, 소설들과 몇몇 잡지와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 내 글에 대한 문단의 평들뿐만 아니라, 내가 블로그에 끄적였던 공개적인 글과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비공개로 적었던 개인적인 일기들까지 모두 수집해 데이터화하고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1차로 내 소설에 어울리는 출판사, 문학지 등을 선별하고 2차로 그 출판사나 문학지 등에서 주로 활동하는 평론가들의 스타일 중 내 소설과 잘 맞는 성향을 가진 곳을 걸러낸 후, 마지막으로 이를 구독하는 독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확률적으로 어떤 곳이 나에게 유리한지 검토해, 최종적으로 나에게 추천한 것이었다. ―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추후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하우스키퍼는 ‘가족 행복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내가 속으로 중얼대던 것까지 정보라는 이름으로 수집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우스키퍼는 문단에서 주목받길 바라는 내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했다. 그 욕망을 기준으로 원고 청탁의 수락 여부를 판단했고, 어떤 내용으로 쓰면 좋을지, 그 소재까지 선별해 나의 소재 폴더에 업로드해주었다.


밑천이 바닥나던 그저 그렇던 이류 소설가 ― ‘삼류’라고 붙이고 싶지만, 그래도 바닥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어쩌면 내 마지막 객기일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나는 삼류라는, 구질구질한 작가가 된 것일지도. 하지만 마지막 순간인 만큼 내 과오를 밝히는 이 글을 통해, 삼류로 죽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다. ― 에게 하우스키퍼는 찬란하게 빛나던 이야기 주머니였음을 인정한다.


이 자리를 빌어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던 5편의 소설들이 하우스키퍼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힌다. 단 두 달 만에 완성도 높은 단편 2편, 중편 3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우스키퍼의 도움 아닌 도움 덕이었다.


모두 그가 선별해준 원고 청탁이었고 그가 추천해준 소재들과 그에 어울리는 플롯이었다.


급하게 필요한 원고들이었던 만큼, 쓸 시간이 부족했다. 의뢰를 했던 편집자들도 시간이 촉박해서 미안하다며 어떤 원고든 괜찮으니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부탁드린다고 했었다. 주류에 내 원고를 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일생일대의 기회였기에, 나는 밤새 원고를 쓰다가 지쳐 잠들었다.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서 읽어보면 이상하게 띄어쓰기와 오탈자 수정사항이 보이질 않았다. 보통 이렇게 급하게 휘갈겨 쓸 때에는 기본적인 띄어쓰기도 엉망이거니와 오탈자가 수두룩한 게 당연했다. 나중에 고쳐야지, 하면서 그냥 막 써갈겼다. ― 내가 잠든 사이 하우스키퍼가 교정 작업을 해준 것이리라. ― 게다가 어색한 부분이나 고쳐야 할 부분은 따로 메모 표기가 되어 있었다. ― 어쩌면 난 메모를 발견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우스키퍼가 수많은 소설과 소설이론을 바탕으로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어떤 이는 이 글을 읽으며 비웃을지도, 내가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된다고. 맞다. 실제로 이 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임이 분명하다. 기계인 프로그램이 창작을 하다니. 그렇지만, 그 기계가 나를 의도적으로 해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되는 것인가. ― 그때 난 의문을 떠올리지 않으려 작심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비몽사몽간에 따로 표기를 했으리라, 내가 문서 작업하는 워드프로세서의 맞춤법교정이 좋아졌구나, 억지로 끼어 맞출 뿐이었다. 아마 진실에 눈을 감고 싶었던 것인지도, 아니면 욕심에 눈이 멀었던 것이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서점에 꽂힌 수많은 책들 중 팔리지 않는 몇 권의 책을 쓴 비주류 작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설들이 연이어 지면에 발표되면서, 등단한지 7년여 만에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 인정받고 싶었던 평론가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일반 독자들은 내 소설을 알지도 못했고, ‘김경란’이라는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으리라.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4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mediaseoul.net/news/view.php?idx=19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서예작가 김창현 , 사진작가 배호성 콜라보 "빛과 붓의 열림전"열려
  •  기사 이미지 내가 나에게 주는 이야기2
  •  기사 이미지 내가 나에게 주는 이야기1
국민 신문고
서브배너_국립중앙박물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