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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_04
  • 기사등록 2015-12-30 11: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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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없이 써댄 소설을 편집자에게 보내는 족족 일주일도 안 되어 서점에 깔리거나, 신문 지면에 올랐고, 인터넷에 게재되었다. 모두 편집자들이 교정할 거리도 없다며 무척이나 좋아라했다. 특히나 가장 최근에 문학지에 게재된 중편소설인 ‘서울을 헤매는 앨리스’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다른 출판사 편집장이나 주간들은 그동안 김경란 작가의 재능을 몰라봤다며, 차기작 계약을 자기들과 하자고, 전화를 해댔다. 문단에서는 신선한 발상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꼬집으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짜임새 있는 구성력이 돋보인다며, 그동안 K작가가 저평가되었다면서 적극적으로 찬사를 해댔다. 독자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몇몇 영화사에서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내 블로그의 조회 건수가 하루 사이에 만 건을 넘어섰다. 게다가 일주일이 넘도록 실시간 검색어 순위도 3위 안에 들었다. 언론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가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요청해올 정도였다.


누가 말했던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내 소설이 그 정도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실감이 나질 않았다. 게다가 영화도 아닌 소설이 이정도로 파급력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마치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블로그 조회 건수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도 모두 하우스키퍼의 농간이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라면, 인터넷 상의 숫자 조작은 쉬운 일에 속했으리라.


내 일생 중 최고로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돌이켜보니, 나는 가짜 날개를 단 이카루스처럼 태양이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날개가 불타 추락할 줄도 모르고. 단지 그 모든 게 하우스키퍼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겠지만 인정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너무 완고했다. 게다가 헐레벌떡, 후다닥 쓴 중편이 이 정도라면 마음먹고 제대로 쓰면 더욱 대단한 작품이 나올 거라는 오만함도 한몫했다. 당시엔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중이었으니까.

행복한 꿈에 취해 비틀거리던 중, 나는 언론 인터뷰가 끝날 때를 기다리던 메이저 출판사인 R출판사 편집장과 차를 마시게 되었다. 차를 마시며 최근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 겸양을 떨며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 순간 내 앞에 계약서가 디밀어졌다.


“한동안 쉬시더니 나름 원고 준비로 바쁘셨던가 봐요. 두 달만에 단편 3편과 중편 2편을 토해내시다니. 게다가 완성도도 높던데요.”


“아, 뭐, 그동안 짬짬이 써놨던 것들이라서요. 살짝만 고쳤죠, 뭐.”


“장편 준비하신 것도 있나요? 이렇게 이슈가 될 때, 같이 내보내 줘야, 또 책이 잘 나가잖아요. 게다가 ‘서울을 헤매는 앨리스’ 영화화도 결정됐구, 이 즈음에 적당히 광고만 쳐주면, 게임 끝이죠. 저희가 섭섭하지 않게 광고로 밀어드릴게요. 걱정 마시고, 저희랑 계약하시죠.”


편집장이 계약서와 길쭉한 상자를 건넸다. 상자의 포장을 풀자 최고급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빵빵하게 부푼 자만심과 귀를 간질이는 언변에 나는 덜컥 계약서에 이름을 휘갈겼다. 확실히 그때 난 욕심에 눈이 멀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마감일 확인도 안 하고 원고지 1,000매 이상의 장편을 계약하고 만 것이다. 팔랑이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찬찬히 계약서를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너무 촐싹댔음을 깨달았다.


실수를 감추고 싶은 여섯 살배기 아이처럼, 난 남편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석 달 만에 어찌 원고지 천 매 이상의 장편을 쓸 수 있으랴. 게다가 난 차기작에 대한 구상도 못한 상황이었다! 속으로 끙끙 앓았다. 거의 잠도 못 잤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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