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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위에 올라온 시> 시 읽기의 즐거움
  • 기사등록 2016-01-01 23:49:20
  • 수정 2016-01-02 1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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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의 즐거움


삼한사온도 없이 추위가 몰아치는 도시의 골방에서 시를 통해 세상을 읽는 즐거움이 크다. 환경이 사람 사이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져서 행복지수는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 느낌이다. 문예지의 환경은 어떠한가? 그 척박한 토양 위에서 풍요와 자유를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 시인의 식탁엔 밥 말고 무엇이 올려질까 / 초승달로 나무를 베어다 초가삼간 집을 짓던 선비는 어느 별에 살고 계실까? 작가를 떠나면 작품은 감상자의 몫이라 했던가? ‘상상과 여유’ ‘날카로움과 긴장’ 붓끝을 따라 산책에 나선다

들꽃이 피듯 곰팡이들이 피었다/ 어둠이 바퀴벌레를 낳고/ 쥐들이 천장을 내 달았다 / 햇빛은 찾아오지 않아 / 낮과 밤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창을 만들어야지”/ 바깥으로 내닫는 창을/사내는 망치대신 붓을 들고 / 벽에다 창을 그려 넣었다 // 새들이 앉을 나무도 그려 넣었다//

“햇빛이 찾아 올거야” / 창을 넘어 // 사내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 구석 어디쯤 / 바람이 지나고 귀뚜라미가 울었다 // 절망이 외로움으로 찾아오고 / 사내의 눈가엔 눈물이 어렸다

- 부성철 시 <지하 셋방> (화백문학)


곰팡이가 핀 지하 셋방에서 들꽃과 햇볕을 그리워하며 붓을 들고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사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바람은 또 얼마나 지나갔을까? 사내의 눈물은 말라도 한참 말라서 건조해졌을 법 하지만 여전히 귀뚜라미가 울고 외로움과 여운이 독자의 마음을 쓸쓸하게 하기보다 성숙하게 한다.

그렇다.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설정 속에서 행간과 연의 나눔, 여백과 여유는 상상으로 이어지며 형상화를 돕는다. 시적 화자인 사나이의 마음이 더욱 단단하고 맑아지는 흐름을 따라가노라면 삶의 고단함을 잊고 새는 나무에서 노래를 부르고 바퀴 벌레도 싫지 않은 존재가 된다. 막막한 절망 가운데 귀뚜라미 소리를 위안삼아 어둠을 극복하고 개척하려는 마음의 창을 보았고 의지를 읽었다.

부성철의 시는 여러 편에서 잊혀진 기억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았던 서민들의 아름다운 시절 그 젊음의 초상이 보이고 추억으로 읽혀지게 하는 정감과 감동의 힘을 지녔다.

감나무는 감들이 사는 세상 / 매달려만 있으면 그냥 자라는 거 같은데 / 사람들 세상 싫을 때가 있듯이/ 감도 나무가 못 견디게 싫을 때가 있는지/ 떨어지는 땡감이여 / 툭 소리로 바뀌는 이승과 정승 / 마음을 물어보듯 한 입 베어 물고 싶지만 /세상을 바꿀 정도면 굳이 맛보지 않아도 떫겠다 / 떨어진 꼭지가 말끔한 걸 보면 / 오래 전부터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었구나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면서 /

떨떠름한 나무를 버티며 감들이 붉게 익는다 / 노인이라는 말을 싫어하듯 / 홍시라는 말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겠다 / 나무를 쳐다보며 이 가지 저 가지 살피는 사람들 / 감에게는 저승사자가 아닐지 / 사람 데려가듯 감을 쥐고 당기면 / 터질 거 같은데도 놓치지 않으려는 꼭지 / 땡감 떨어진 꼭지 말끔해도 읽어보면 /자살하며 남긴 유서처럼 아프다

- 홍승태 시 <감을 따면서> (화백문학)

붉게 익어가는 감 저만치 노인을 배치해 놓고 나무와 감의 위치에서 ‘나도 마음이 있어 한번 들어보시라구’ 감을 따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별과 죽음, 사회적 아픔을 외치기보다 살포시 말하는 발상과 감각이 신선하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인과 홍시가 등가를 이루는 서글픔의 행간에서 노을이 배경으로 아름답게 비치는 풍광을 연상하기란 어렵지가 않다. 그런데 살만큼 살았으니 그만 손을 놓으라면 섭섭하고 아프지 않겠는가. 명절에 다녀가는 자손들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어르신들의 속내라 할까? 무심코 던지는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상채기를 내면서 또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복잡한 내면을 살피고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그 첫걸음은 자기 성찰일 것이다

무는 한 개에 4,000원이고 /배추도 7,000원이나 했다고요//

추석 차례상에 / 배를 올리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아버지/ 달을 깨물어 드시다니요//

죄송해요

- 오영수 시 <달> (화백문학)

태풍으로 배추값이 폭등하여 차례상에 배를 올리지 못한 일상적인 일을 소재로 시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그냥 달이 아니라 배가 고프셔서 아버지가 깨물고 계신 달은 그 맛이 어떠할까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 당돌한 충격을 가하고 기호를 펼쳐보이며 시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런 실험은 이상하기보다 시인정신에 투철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오영수 시인의 다른 작품 <허수어미>에서 들판에 허수아비는 많은데 허수어미는 어째서 없는 것일까? 동화적 의문은 날카로움에 서정을 더하며 즐거운 상상을 준다. 참새와 여자는 같은 학명 아니냐고 넌지시 독자의 의중을 떠보며 막강 여성부에 화살을 겨눈다. 이것은 연출인데도 풍경과 잘 어울려 자연스럽게 가슴에 스며들고 그 울림이 읽을수록 커진다

잠은/ 신경을 건드리는 무수한 말을 낳는다 // 갓난아기였을 적에/ -잠이 보배다 그냥 둬라-하셨다던 할머니 / 어릴 적 봄날 곤하게 잠든 나를 / -어린 것이 코를 다 고네-했다던 이모님 / 책상머리에 앉아 졸기만 하던 시절 / -공부는 언제 할래-못마땅해 하던 어머니 /사촌누이 신랑 될 사람 왔던 날 밤 /-오늘은 왠 일이냐-눈을 흘기던 누님 / 한 두 해 백수로 허송하던 청년기 / -허구헌 날 잠만 자냐-혀를 차시던 아버지// 늘보가 기억하던 말은 / 모두 잠이 되고 / 깨어 있는 잠은 말을 기억한다.

-정유준 시 <잠에 대하여 - 말> (시문학)

잠에 대한 연작시의 하나를 골라서 읽는다. 이런 저런 잔소리들이 파노라마로 가볍게 지나간다 저 말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기억 속에 살아남아서 자양분이 되고 <깨우침>이 될까? 잠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에 너그러움이 묻어나며 끈질김이 힘줄을 놓지 않아서 시의 건강한 미덕(美德)을 유지하고 깊은데서 사유의 샘물을 퍼다 올린다.

집에 가니 어머니는 얼른 보일러 스위치를 켜놓는다 보일러 눈금을 보니 설 쇠던 일주일 전 그대로다 추운날씨에도 돈 아끼려고 보일러를 켜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개 짖는 소리에 후다닥 방문을 열고 내다보신다 혹시 객지에 사는 동생이 오나해서이다 그간 개 짖는 소리 몇 번이나 났을까 밖을 내다보시는 눈망울에 노을빛 산이 고여 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들을 위해 물을 끓이고 만두를 물속에 넣으신다 지는 해의 한줄기가 어머니 허리에 구부정하게 매달려있다 싱크대를 만지시기도 힘겨워 보이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 날이 몇 번이나 될까 만두를 삼킨다 만두가 울컥거린다//

돌아서는 발길에다가 아버지는 연신 두 손을 들어보이신다 내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든신다 아버지 평생을 끌어 모은 마음 벌이 웅웅거리는 날개같이 다가온다//

겨울하늘에 회색 옷감 같은 슬픔이 걸렸다

-남진원 시 <겨울 하늘> (문학마을)

어느 산촌의 겨울 단편영화에 빠져든 느낌, 묘사와 감각이 섬세하고 탁월한 시편이다. 가벼운 붓터치, 감동의 속도와 크기는 빠르고 놀랍다. 만두도 울컥거리는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시를 다시 읽는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 날이 얼마나 될까? 효심이 솓구쳐 애틋함으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을 울먹이게 하는데 시간이란 놈을 꼼짝 못하게 정지시킬 수는 없을까?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늙으신 어머니는 누구의 어머니인가? 만남의 기쁨과 멀어짐의 아쉬움이 행간을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든다.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평생을 끌어 모은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의 온도와 크기를 어떻게 헤아릴까? 웅웅거리는 마음 벌에게 한방 쏘여서 산이 눈 속으로 달려든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켜가는 길이 곧 시가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요 시의 위의를 회복하는 일일 터이다. 이 작품은 문학의 방향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감흥을 회색 하늘에 표상하고 있음이다

아침 도착하자 분주히 하역작업하고 있는 이들// 안테나 뽑고 어디론가 통신하는 자들 /

크고 작은 지게차들 연이어 가고 / 갈색 수송기 한 대가 이륙한다 / 흰색 줄무늬 헬리콥터 몇 대도 띄우고 / 간 밤 행성에서 싣고 온 화물들 하역하느라/ 벌, 개미들 노동이 여기 항구보다 더 분주하다/ 이 아저씨들 하역 다 끝나면 나는/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 콘돔을 앞에 두고/ 저건 점박이 이건 꼽새 아저씨 것, 하고 한번 우겨보리라.//

-김영남 시 <호박꽃> (문학과 창작)

호박꽃 주변에서 일어나는 예사로운 일들이 시를 통해 인간의 노동과 작업으로 바꾸어서 인격과 재미를 가지게 되니 의미가 생기고 흥미가 돋는다. 행성이 별것인가? 사람들이여 깔보지 마라-. 헬리콥터 몇 대 장난감 이상의 형상화를 훌륭하게 돕는다. 사람이 저 생물보다 못한 부분이 촉수와 감각 뿐이겠는가? 불안한 미래 불확실한 현실에서 안테나도 없이 한 번 두 번 우기지 말고 자세를 낮추어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을 성찰해 볼 일이다. 시인이여 ‘정신의 꽃’ 시를 통해 생명 존중 생명 사랑의 길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

우리 동네에는 몇 개의 특이한 술집 이름이 있었다.//

Sul. Zip/ 조용한 집 찾다가 열 받아서 차린 집

술집이라고 하기엔 좀…….//

어느 날 ‘술집이라고 하기엔 좀’ 술집에서 민간인, 군인 몇이 술을 먹다가 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던 주인에게 담당 경관이 술집이름을 물었다. 주인은 ‘술집이라고 하기엔 좀’ 경관이 몇 번을 물었으나, 주인은 같은 대답뿐이었다. 화가 치민 경관이 부하에게 간판을 보고 오라 했다. 다녀온 부하가 ‘술집이라고 하기엔 좀’이라 말했다. 화가 더욱 치민 경관이 직접 간판을 보고 오면서 투덜투덜 대었다. 무슨 술집 이름이 저래,//

가끔 나도 나를 ‘시인이라고 하기엔 좀’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문정영의 시 <술집이라고 하기엔 좀> (계간문예)

에피소드가 시가 되는 경로를 생동감 나게 잘 보여준다. 웃음 뒤에 숨겨진 칼끝이 날카롭게 자신을 겨누며 나아가 치장하며 이름값 못하는 시인 예술가 어딘가를 아프지 않게 찌른다. 말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인들의 세계를 슬쩍 엿보았다. 우리말 ‘좀’ 조금 약간이라는 말의 크기가 여기서는 해일(海溢)만큼 느껴진다. 아픔과 치유는 독자와 세상의 몫일 터이다. 민간인과 군인 경관 시인, 자연과 인간 그리고 술집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나라 시인이 꿈꾸는 세계를 함께 살펴보고 달콤한 상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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