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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_05
  • 기사등록 2016-01-07 07: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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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아무것도 못하고 소재 궁리에 빠져 있었다. 당시 하우스키퍼는 나의 계약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하기사 계약하던 날, 아침부터 꽃단장을 하느라 분주해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생애 첫 인터뷰라 설레기도 했더랬다. 발바닥이 허공에 붕붕 떠 있느라, 휴대폰도 놓고 나갔고, R출판사 편집장과의 만남은 일정 중에 있던 만남도 아니었으며, 게다가 충동적으로 계약을 하고 들어와 전전긍긍하며 혹시나 남편이 볼까 싶어 계약서와 만년필을 화장대 서랍 깊숙이 숨겨놓았으니, 그 누가 알았을까.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일주일이 지났다. 몸무게가 3키로나 쑥 빠졌다. 신경이 곤두서자 몸무게가 훌렁훌렁 줄어들었다. 남편은 몇 번이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최근 쓰고 있는 게 잘 안 풀려서 그렇다며 대충 둘러댔다.


날짜가 흘러가는 달력을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열흘이 지나자 이젠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우스키퍼는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음식물 섭취량이 부족하다고 나에게 족욕과 영양가 높은 음식을 추천해주었다. 하지만 입맛도 없었고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나의 암울한 미래가 그려졌다. 추락한 작가에 대한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비웃는 시선과 그 앞에 위축된 쪼그라든 내 모습이, 나를 향해 내뱉는 빈정대는 눈초리가 보였다.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지 못하니 잠도 잘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문단에서도 명실공히 인정받고 싶었다.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길을 걸어가면 몇몇 사람은 나를 돌아보며 ‘저 사람, 김경란 작가야!’라고 옆 사람에게 수군거려줬으면 싶었다.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악수라도 청해주기를 바랐다. 어쩌면 함께 사진이라도 찍기를 청한다면, 흔쾌히 같이 찍어주고 싶었다.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을 때마다 선생님들의 첫 물음은 ‘왜, 하필 수많은 직업 중에 작가가 되려고 하는지?’였다. 내가 왜 작가가 되려는지, 왜 소설을 쓰는지, 습작기 동안 수많은 물음을 내게 던졌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은 적막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책이 좋아서, 글 쓰는 일이 좋아서라고 대충 둘러댔었다. 그러나 이젠 알 것 같다. 난 소설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능력 없고 창피한 딸이 아닌 번듯하고 유명한 소설가 김경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나 엄마에게 증명하고 싶었고 나를 무시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나 ‘김경란’을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었다.


엄마는 그저 그런 대학, 특히나 하등 쓰잘머리 없는 국문학과를 졸업한 나를 대놓고 창피해 했다. 친구들이 늘어놓는 자식 자랑 대회에서 매번 꼴등을 차지했던지, 동창 모임만 나갔다 오면 나를 들볶았다. 어느 날은 서울 유명 대학들의 편입안내 팸플릿을 들고 와 나에게 편입을 강요했다. 그게 먹히지 않자, 취직이라도 대기업으로 들어가라고 닦달했다. 남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며.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대기업을 연발하며 주문을 외웠다. 엄마의 열정적인 대기업 꿈을 이뤄주고 싶었지만, 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난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딸이 될 수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딸은 상위 1%의 성적과 화려한 스펙이 있어야 했지만 딸에게는 스펙 따윈 없었다. 토익 모의고사 책 대신 내 손에 들려 있던 건 제인 오스틴(Jane Austen), 도스토옙스키(Dostoevsky, Fyodor Mikhailovich)의 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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