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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_06
  • 기사등록 2016-01-07 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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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대기업 대문을 두드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대기업은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에게 몇 번을 말했지만 내 말은 엄마의 귓구멍에 닿지 조차 않았다. 내 말을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기업 주문을 외웠다. 난 엄마를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포기했다.

 

내가 엄마의 성에 차지도 않는 작은 벤처 회사에 입사하자 엄마는 나에게 비명을 지르며 내 방에 있던 온갖 책들을 현관문 앞에 내던지고 찢어버렸다. 엄마는 원수를 보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날 이후 엄마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나는 엄마의 창피한 자식이, 엄마 인생의 유일한 오점이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굳이 말을 걸지도 않았고, 나를 봐도 못 본 척했다. 간혹 눈이 마주치거나 나를 볼 때면 한숨을 쉬며 실망한 눈초리를 내보였다. 그 눈빛은 내가 결혼을 해도,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서 독립 아닌 독립(독립이라 쓰고 결혼이라 읽을 수 있겠다)을 한 후부터 자아 찾기에 돌입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이 되는 일이었다. 난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엄마가 없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가. 감히 엄마 옆에 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소설가’라는 황홀한 단어를 향해 첫발을 내딛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옆에서 응원해준 남편 덕분이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작가라는 타이틀만 쥐면 모든 게 내 뜻대로 될 줄 알았다. 내 소설만 출간되면 하룻밤 사이에 스타 작가가 되어 엄마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수 있을 줄 알았던 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는 것은 비로소 작가가 되고서야 알았다. 난 서점에 깔린 수만 권의 책 중 한 권도 아닌, 1/7 권의 작가였을 뿐이었다.


내 첫 번째 책을 건네받던 엄마의 역력한 빈정대는 눈빛이 아직도 선연히 아른거렸다. 엄마는 책 표지에 적힌 대표작가 ‘B 외’를 눈짓하며 내 이름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난 차례 페이지를 펼쳐 보였다. 엄마는 한번 쓰윽 보더니 책을 덮어 소파 구석에, 던져놓으며 짜증스레 말했다.


“3년 동안 노력한 결과가 이거니? 그 정성으로 대기업에 들어갔으면 벌써 팀장은 됐겠다.”


치욕스러웠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날 난 다짐했다. 엄마 입에서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리라.


그 다짐을 현실로 만드는 건 어려웠다. 작가가 된 지 7년. 이제야 겨우 엄마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런데! 여기서 고꾸라지는 것인가. 눈을 감자 그 누구도 아닌, 엄마의 실망한 눈빛이 떠올랐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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