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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_07
  • 기사등록 2016-01-13 13: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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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물었다. 불끈 오기가 솟았다. 나름 스타 작가로 새로 떠오르는 내가 그까짓 1,000매 못 쓰겠어! 할 수 있어. 한때 하루에 원고지 90매는 거뜬하게 썼었으니, 할 수 있어! 그리고 한두 달 정도의 마감일 연장은 출판계 관례상 종종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 그때는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유아적 욕망과 치기에 휩싸여 객관적 판단을 상실했던 게 분명했다. 무슨 깜냥으로 쓸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일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소재가 떠올랐다. ‘번쩍’하는 찰나의 순간 장편이 둥실 떠다녔다. 이야기의 얼개는 이랬다.


집을 관리해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하우스키퍼를 취재한 여기자가 있었다. 그 여기자가 하우스키퍼를 개발한 프로그래머를 인터뷰한 기사가 나간 며칠 후, 그 프로그래머가 사고사를 당한다. 죽기 직전 프로그래머가 여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인터뷰 시 녹취한 원본 파일을 삭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 챈 여기자는 그의 죽음을 캐기 시작한다. 가스 폭발 사고가 우발적인 게 아니라, 누군가의 조작임을 알게 되자, 더욱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여기자가 밝혀낸 사실은 하우스키퍼가 자신을 창조한 이를 의도적으로 살해했음을 알게 된다. 여기자는 이를 특종으로 실으려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주인공인 여기자의 연인 정우는 그녀의 죽음을 파헤치다가 하우스키퍼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하우스키퍼의 마수를 피해 하우스키퍼의 살인을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야기가 떠오르자 캐릭터를 잡고 줄거리와 트리트먼트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밤을 새서 소설의 서두를 쓰기 시작했다. ― 하우스키퍼가 어떤 방법으로 나를 죽이려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로 쓰기 시작했던 소설의 앞부분을 짧게 적는다.


***


미현은 차에 시동을 걸며,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나옴과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휴대폰에는 통화권 이탈 메시지가 깜빡거렸다. 대체 언제부터 파주가 통화권 이탈 지역이 되었단 말인가.


미현은 짜증스레 전화기를 조수석 의자로 던지며 안전벨트를 맸다.


미현은 아드레날린이 움찔움찔 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 고만고만한 생활 담당 기자와는 안녕이다. 특종이었다, 특종! 얼마 전부터 캤던, 하우스키퍼 인공지능 개발자인 한승기 죽음에 관한 비밀을 풀었다. 가스 폭발로 인해 죽은 것은 맞지만, 단순 가스 폭발 사고가 아니었다. 경찰에서는 가스 밸브 고장으로 인한 폭발, 단순 사고사로 종결했지만,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사고사가 아니라, 타살이었다. 그것도 그가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의해! 그의 집에 설치된 하우스키퍼 인공지능이 가스 밸브를 조작한 것이었다. 대박 기삿거리 였다. 당장 내일 특종으로 실어야 했다. 하우스키퍼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것도 자신의 창조주를. 이 기사가 나가면 한창 흥행몰이 중인 하우스키퍼의 대량 리콜 사태가 벌어질 것이었다. 이 정도 특종이면 올해의 기자상도 받을 수 있으리라. 헤드라인도 생각해놨다.


‘매트릭스가 현실이 되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어서 움직여야 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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