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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김경란 소설가 행복 프로젝트_마지막 회
  • 기사등록 2016-01-21 19: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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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가 된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도 난 내가 아닌 저 미친 기계덩어리에 의해 행복이 규정되었다. 물론 스타 작가에 대한 허황된 욕심을 가졌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나를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잘못된 생각을 되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꿈꿨던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다. 화가 났다. 그동안 서른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화가 폭발하려는 찰나였다. 정말정말 화가 났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행복을 강요당하며 웃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서재 벽에 액자를 걸려다가 못해서 한쪽 구석에 치워두었던 망치가 눈에 띄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서재에 설치된 하우스키퍼 센서를 망치로 때려 부수고 잡아 뜯어낸 후였다. 컴퓨터도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서재 밖 거실과 안방에서는 요란한 경보가 울렸다. 거실로 나와 보니, 이미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방범창이 내려져 있었고, 하우스키퍼의 냉랭한 경보음이 귀를 찢을 듯 울리고 있었다.


“멈춰! 멈추라구! 미쳤어?”


난 휴대폰으로 하우스키퍼를 해제하려고 했으나 스크린터치가 전혀 먹히질 않았다. 이성을 잃고 망치를 휘두르다가 같이 망가진 게 분명했다. 그때 천장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졌다. 차가운 물벼락을 맞으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하우스키퍼가 오류가 난 게 분명했다.


현관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문이 꿈쩍도 하질 않았다. 망치로 두드려도 봤으나 단단한 철문은 요지부동이었다. 거실로 돌아와 방범창을 열어보려 했으나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거실에 매달린 하우스키퍼 센서에 소리를 질렀다. 여러 차례 멈추라고 소리를 질러대도 반응이 없었다. 거실 벽에 걸린 스크린터치 액정을 손바닥으로 몇 번을 두드리자 그제야 꺼졌던 화면이 켜졌다. 화면에는 ‘김경란 행복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리포트가 펼쳐져 있었다.


뭔가 싶어 눈으로 훑으며 빠르게 읽었다. 수십 쪽 분량의 리포트가 빠르게 장면 전환되며 넘어가고 있었다. 차분히 읽을 틈은 없었지만 대략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하우스키퍼는 그동안 내가 컴퓨터로 끄적였던 일기장을 분석했던 것 같다. ‘유명해지고 싶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다’ 등의 내가 일기장에 썼던 내밀한 욕망의 문장들이 캡처되어 리포트 곳곳에 박혀 있었다.


하우스키퍼는 그 첫 번째 단계로 내 소설을 유명해지도록 만들 수 있는 잡지사 편집자들의 메일이나 컴퓨터를 해킹하고 그들이 나에게 원고를 의뢰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내가 원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소재나 여러 자료를 모았으며 내가 쓴 원고를 교정하면서 수정작업까지 했다고 했다.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모든 것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리포트 마지막에는 내가 ‘위험인물’로 분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우스키퍼를 파괴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악영향에 대해 파헤치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향후 하우스키퍼 인공지능 발전을 저해하는 인물로 평했다. 그러면서 위험인물 제거를 위해 가스 누출 폭발 사고가 적당하다는 살해 방법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김경란 작가 제거 후 남편 최진우에 대한 프로젝트까지 적혀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려고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화면이 검게 변했다. 화면에는 ‘Good Bye’라는 하얀 글자가 화면 가득 떠올랐다. (내가 읽은 모든 것을 자세히 쓰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아주 간략하게만 썼다. 아마 하우스키퍼 백업 데이터에는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리포트가 있을 것이다.)


내가 썼던 소설의 도입부가 떠올랐다. 진짜로 하우스키퍼가 날 죽이려는 것이었다!


안방으로 달려갔다.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안전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믿을 뿐이었다. 안방에는 하우스키퍼 센서를 전혀 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치기사가 달아야 한다고 우겼지만 왠지 남편과 나의 내밀한 사생활이 센서로 감지되는 게 싫어서 달지 않았다.


화장대 서랍 깊숙이 넣어놓았던 계약서와 만년필을 꺼냈다. 집에 유일하게 있는 종이와 펜이었다. 계약서의 하얀 백지에 만년필로 두서없이 끄적인 이 글을 읽을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래도 써야 했다. 난 글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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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dldl15412016-02-21 21:22:00

    안방으로 도망가는 장면을, 도망가서 글을 남기는 장면을 전개2쯤으로 해서 아방타이틀로 보여주고, 하우스키가 먼지 대략 보여주면서 주인공과 하우스키퍼랑 지능대결을 하는 구성으로 영화제작하면 좋을듯해여~^^

    판타지스릴러 장르정도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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