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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고객상담실로 전화한 천사_1
  • 기사등록 2016-01-26 14: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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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상담사 한지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도 지겨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쳇바퀴를 돌 듯 똑같고 똑같은 일상.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누구나 다 아는 좋은 대학을 나왔고 학과도 공부를 잘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모르겠다.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혹시요, SNS 하세요?”


잘나가는 대학 동기들 소식을 들을 때면 ‘OTL스런 감정(좌절감에 땅을 치는 감정 표현의 발로랄까. 이 이모티콘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내 패배감에 찌든 기분을 잘 표현하고 있다)’에 빠져들었다. 대학 땐 찰떡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의 연락도 서서히 피하기 시작했다. 한때 같은 강의를 듣고 같은 시험을 봤던 친구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은 나와 부모가 달랐다. ‘돈 많은 부모’라는 옵션은 친구들과 나의 격차를 크게 벌려놓았다.


잘나가는 삶을 살며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동기들. 그들의 SNS에 올려진 행복에 겨운 사진을 보기 싫어 SNS 친구 관계를 끊은 것은 오로지 나의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를 꾹꾹 누르고 싶은 동기들의 SNS를 왜 몰래 들여다보고 있을까.


SNS에 올라온 사진들은 패턴이 비슷했다.


1. 장소는 스타벅스. 때로는 고급 레스토랑. 

2. 테이블에 스타벅스 머그컵을 올려놓는다. 꼭 스벅이어야 한다. 그래야 간지가 살거든.

3. 그 옆에 새로 구입한 명품 신상 가방을 배치한다. 여기서 가방은 신상 옷이나 구두, 선물 받은 악세서리 등으로 바뀐다.

4. 모든 배치가 끝나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예뻐 보이는 각도로 셀카를 찍는다. 

5. 그 아래 감성 돋는 짧은 글. 

‘힘겨운 업무를 끝내고 내 자신을 위로하는 커피 한 잔.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랄하네. 커피 마시면 잠 안 온다고 지랄하던 년이. 가방 자랑하려고 올린 거고만. 근데 얘 얼굴 왜 이래? 내가 아는 은영이 맞아? 헐. 이거, 이거 양악했고만? 어쩐지 한동안 사진 안 올린다 했더니만. 역시 돈이 좋구나. 이년 우리 학교에 겨우겨우 턱걸이로 들어와놓고. 나보다 공부도 못했던 게. 치, 웃겨.


나도 모르게 중얼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니다. 진짜 웃긴 사람은 나다. 남을 질시하고 시기하는 사람. 무조건 깍아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나. 찌질하다. 과거만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나 같은 인간. 정말 추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바닥으로 떨어지다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렇게 혼자 중얼대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지. 그렇다고 내가 작당하고 악질적으로 험한 말을 유포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중얼대지도 못해?


그런데 이 고객 불안하다. 이 일을 6개월 한 사람으로서 SNS를 들먹이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못 봤다. 진상 냄새가 풍긴다. 조심하자.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구입한 구스다운이불말예요. 그거 어떤 사람이 페북에 올렸던데, 그거 안에 거위털이 조금밖에 없다던데. 표기된 충전재 함량에 미달된다면서요. 분명 표기는 유럽산 구스다운 솜털 95%, 깃털 5%였잖아요. 그런데 깃털이 1%도 채 안 된다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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