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닥에 고인 침과 초콜릿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서둘러 꿀꺽 삼켰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고객과의 게임에서 난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검을 놓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왠지 시작이 좋지 않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상담사 한지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묵묵부답. 목덜미에 솜털이 바짝 솟았다. 다시 박팀장한테 끌려갈 것을 떠올리니 혼백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카드값 문자까지. 누군가 턱 밑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 같달까.
“고객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래가 들려서요.”
혹시나 싶어서 걸려온 번호를 재빨리 입력해 고객정보를 확인했다. 브이브이아이피(vvip)고객이었다. 더욱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와주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구스다운인가? 거위털이불 때문에 전화했거든요.”
또 거위털이불이다. 거위들이 집단으로 날을 잡았나.
“이불 안에 시체가 들어 있어요.”
“네. 도와드리기에 앞서 먼저 고객님 성함 확인 부탁드립니다.”
“시체가 있다고요.”
“네, 고객님 먼저 성함을…?”
뭐라고? 방금 시체라고 한 건가? 어이가 없었다. 시체라니 거위 시체라도 들어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또 한 번 저승사자한테 끌려갈 것 같은 기분 더러운 예감이 든다.
“고객님, 뭐가 들어 있다고요?”
“우리 시어머님이에요.”
헐. 나랑 장난하자는 걸까? 대체 뭐라고 떠들어대는 걸까?
“고객님, 이 통화는 통화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녹음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죽였어요.”
이 뜬금없는 자백은 뭘까. 여기가 112야? 그런 건 112에 신고하라고.
“고객님, 죄송합니다. 여긴 홈쇼핑 고객상담실입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신 사항은 도와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거기서 산 건데요. 그것만 산 줄 아세요? 거기서 판매하는 상품 대다수는 우리 시어머니가 죄다 사들였다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돈이 많은 줄 아세요?
남편은 매일 집구석에서 뒹굴거리다가 지겨우면 겜방에 가서 게임이나 하다 오는 건달이나 다름없고. 시어머니는 TV 앞에 들러붙어 종일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댔어. 무슨, 쇼핑중독? 아마 그런 거였을 거야. 어제 산 걸 일주일 후에 또 사고, 한 달 뒤에 또 사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같은 물건 환불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대기만 하는지. 사들인 물건들 때문에 집에 발을 디디기도 힘들 지경이라고.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허리가 휘고 지문이 닳도록 일해서 번 돈이라고. 내 피같은 돈을 전부 너네한테 퍼 날랐단 말야. 그거 전부 내 돈으로 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