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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고객상담실로 전화한 천사_5
  • 기사등록 2016-02-11 15: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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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대하다가 반말하다가, 성내다가 차분하다가. 어쩌면 이 사람 정신이 이상한 걸지도.


“제가 엄청 싫어하던 미영이가 다리를 다친 비둘기를 데려왔어요. 하얀 비둘기였죠. 원장님은 그 비둘기를 평화와 천사의 상징으로 사용해보자고 하셨죠. 그 뭐냐, 극적인 효과?, 아무튼 후원자들에게 좀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전 비둘기가 무서웠지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싫다고 했다가 원장님 눈 밖에 나긴 싫었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장님이 비둘기를 너무 좋아했어요. 원장님은 미영이에게도 하얀 원피스를 입히고 천사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 했지만 천사 날개는 단 하나였어요. 그건 제 거라서 미영이 등에 달아줄 수 없었죠. 그냥 미영이는 하얀 원피스만 입기로 했어요. 전 그것도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왜냐고요?”


고객님, 전 안 물어봤습니다.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얘기나 쭉쭉 해주세요. 곧 제 점심시간이란 말입니다. 뱃속에서 거지가 통곡하고 있습니다. 고객님도 제 배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시죠? 제발 들린다고 해주세요. 그래야 빨리 끝내주실 거잖아요?


“왠지 아시잖아요. 천사는 아기 예수 탄생에서 주인공이란 말이에요. 가장 예쁘고 반짝반짝 빛나는 역할이라고요.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은 모두 꼬질꼬질한 옷을 걸치거나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요. 하얀색의 반작반짝 빛나는 옷을 입는 사람은 유일하게 저 하나라고요! 그래서 후원자들 눈에 잘 띄는 거고요. 천사 같이 예쁜 아이가 바로 저였죠. 그런데, 그 망할 년이 하얀 옷을 입는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주인공은 전데. 왜? 왜, 미영이 따위가 하얗고 예쁜 원피스를 입냐구요. 천사는 단 한 명이라고요. 아시겠어요? 뭐가 문제인지?”


고객님,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니 저에게 이러시면 안 되죠. 천사 타령은 그만하시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안 될까요? 전 무교라서 천사는 잘 몰라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원장님이 비둘기를 날리고 싶어 하는 걸. 훈련된 비둘기를 데려오려면 돈 꽤나 줘야 한다는데, 우리에겐 다리 다친 비둘기가 굴러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전 참았어요. 미영이를 계단에서 밀어버리고 싶은 걸 꾹 참았다고요. 난 착한 천사 같은 아이니까요. 실제로도 천사라고요.”


네, 네. 천사 고객님.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이젠 좀 이야기 속도 좀 내주시겠어요?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는지요? 이제 10분 뒤면 밥 먹으러 갈 시간입니다.


“지루한 시간이 다 지나고 제 차례가 됐어요. 하얗고 반짝반짝 빛나는 날개를 단 천사가 등장할 시간이었죠. 전 너무 신나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답니다. 콩닥콩닥. 그런 기분 아세요? 마치 진짜 천사가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것 같았어요. 무대에 올라가자 모든 사람들이 저만 바라봤어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사인 저를 우러러 봤죠. 너무 좋았어요. 신나기도 했고요. 평소 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저는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무대 중앙으로 가서 제 대사를 말하려고 했죠. 모든 게 완벽했어요. 그년이 망치기 전까지는요.

그때였어요! 그 빌어먹을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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