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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고객상담실로 전화한 천사_6
  • 기사등록 2016-02-16 18: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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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야. 고객님, 진정하세요.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면 제 고막이 찢어질 수도 있다고요. 헤드셋을 끼고 있다는 것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고막이 찢어져도 저 같은 비정규직은 산재 처리도 못 받는다고요. 하긴, 제 사정을 알고 계시거나 정신이 온전하셨다면, 홈쇼핑 고객상담실에 전화해서 이런 얘길 떠들어대지도 않으셨겠죠.


“비둘기를 제 얼굴을 향해 던졌어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얼어버렸죠. 비둘기도 나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영화처럼요.


비둘기는 까만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작고 맨들맨들한 하얀 머리를 뒤로 움직였어요. 그러자 통통한 배가 정면으로 보였죠. 동시에 날개를 힘차게 펄럭였어요. 얼마나 심하게 날갯짓을 했는지 깃털이 뽑혀 공중에 날아다녔어요. 그 바람에 날카롭고 징그러운 발톱이 제 얼굴로 곧바로 날아왔죠. 


일부러 그런 거예요. 고의가 아니었다면 하필 얼굴로 날아왔을 리 없다고요. 그때, 내, 내가, 얼마나….”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떠들어내는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이 사람은 지금 그 감정에 충분히 젖어 있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선 입술을 바르르 떨며 울먹일 수는 없으리라. 나도 잠깐, 아주 잠깐 이 정신 나간 것 같은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목소리뿐이지만 상대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객님 이제 진정하시고요. 도와드리고 싶지만 여긴…”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너무 떨려서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그년이 눈물을 질질 짰지만, 전 알아요. 제가 그때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전 그때 비둘기 발톱에 긁혔어요. 아주 심하게요. 피가 줄줄 났었죠. 상상이 되세요? 하얀 천사옷을 입은 아이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라뇨.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아기 예수 탄생이었는데! 전 고래고래 악을 써댔답니다. 너무 무서웠거든요. 얼굴이 아픈 것보다도 비둘기의 뾰족한 발톱이, 뱀 껍질처럼 징그럽게 갈라진 다리의 피부 때문에요. 이제 아시겠죠? 그때 어떤 난리가 났었겠는지.”


그래서 날개 달린 조류가 무서우신 거군요? 자, 이제 알았습니다. 비둘기, 닭도 싫어하는데 거위라니. 정말 싫으셨겠군요. 이제 거위털이불에 대해서 말씀해보세요. 그래야 이 이야기도 엔딩이 나겠지요. 어서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처음 후원자들은 비둘기로 얻어맞은 상황이 웃겨서 키득키득 거렸죠. 그런데 제가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해대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자 후원자들은 놀란 것 같았어요. 걱정스런 웅성거림이 있었죠. 몇몇 후원자들의 말소리가 들렸거든요. 분명히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때 원장님이 서둘러 무대 위로 뛰어올라오더니 제 등에서 천사 날개를 벗겨내서 미영이한테 달아줬어요. 전 그게 싫어서 더욱 새된 비명을 질러댔죠. 

‘내가 천사야, 내가 천사라고!’

내 괴성에 후원자들의 얼굴빛이 달라지는 걸 보진 못했지만 난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난 포기할 수 없었어요. 지옥 같은 보육원을 벗어날 방법은 천사가 되는 거였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천사가 됐는데! 생살이 찢겨지는 아픔을 참아냈는데, 오줌을 눌 때마다 피가 섞여 나오는 고통을 어떻게 참아냈는데. 그랬는데, 나한테서 천사를 뺏어가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말해보세요. 말이 되냐고요!

제 인생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사지를 갈아 젓갈을 담가도 시원찮을 미영이, 그년 때문에 제 인생이 이따위가 된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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