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었다, 내가 왕따였다는, 내가 그 녀석들의 노리개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잊으려고 애썼고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들이 내 동영상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사이트에 접속해 동영상을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나에겐 권한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되나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했다. 고민하는 사이 동영상의 조회수는 커져갔다. 더 이상 물어뜯을 손톱이 없었다. 열손가락 손톱 모두 쥐가 갉아먹은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멍하니 손톱을 응시하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동영상은 낯모르는 이들의 클릭으로 광활한 인터넷 세상 곳곳으로 퍼 날라지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촬영한 조악한 영상이라도 얼굴이 드러나고 신체 일부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동영상이었다. 막아야 했다!
엄마에게 털어놨다. 그동안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일들을. 태어나서 가장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시간이었다. 괴롭힘을 당하던 시간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엄마에게 사실을 밝히는 시간이 내겐 더욱 큰 고통이었다.
처음, 엄마는 당황했다. 자신의 엄친아, 모범생 아들이 왕따라는 사실이 엄마를 당황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각한 수준의 왕따는 아니라고, 설마 잘난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으리라. 엄마의 강한 자존심은 루저 아들을 용납할 수 없었을 테니.
내 고백을 들은 엄마는 굳은 얼굴로 내 등을 토닥였다. 알아보마, 했다. 엄마는 차분히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상의했다. 처음엔 엄마의 절친한 여동생인 이모였고 그 다음엔 엄마의 친구인 변호사이모였던 것 같다. 이후엔 학교 선생님들인 듯 했다. 아버지는 가장 나중이었다. 한밤중에 퇴근한 아버지에게 엄마가 내 얘기를 했을 때 아버지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집에서 뭐하는 거야?! 문화센터다, 마사지다, 뻔질나게 놀러 다니기만 한 거야? 겨우 아들 하나 있는 거 그것도 제대로 간수 못해? 5대독자야, 5대독자! 크게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아버지와 엄마는 새벽까지 언쟁을 벌였다. 결국 아버지는 서재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엄마는 나와 변호사이모를 대동하고 학교로 갔다. 교장과 담임은 엄마의 분노에 반박할 수 없었다. 변호사라는 든든한 아군은 교장과 담임의 잘못된 학생 지도에 대해 법 조항을 조목조목 짚으며 열거했고 교장과 담임은 선고 받은 죄인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 싸움에서 나는 볼모였다. 싸움을 진두지휘하는 엄마와 참모장인 변호사이모는 교장과 담임에게 나와 나의 동영상을 들먹이며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변호사이모가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사이사이 엄마는 언성을 높였다. 감히 귀한 아들을 왕따로 만든 천하의 나쁜 놈들과 그들을 방관한 무능한 선생들을 향해.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평소 엄마는 차분하고 냉철한, 논리정연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난리통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엄마는 무엇에 화를 내는 걸까?
사랑하는 자식이 괴롭힘을 당한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당연한 모정 때문이었을까? 엄친아를 둔 엄마로서의 경력에 지워지지 않는 흠집이 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완벽한 가정(잘나가는 대기업의 임원인 남편과 전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공부 잘하는 아들, 먼지 한 톨 앉을 자리 없는 집안 살림솜씨를 가진 엄마)이 무너지는 슬픔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