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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기억을 잃어버렸다_2
  • 기사등록 2016-03-23 16: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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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엄마는 나를 힘껏 안아줬다. 괜찮다고 속삭이며. 난 괜찮지 않았지만 평소 엄마의 행동양식에서 벗어난 살가움에 의아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한 새벽. 나는 잠들지 못했다. 학교에 갈 생각을 하면 심장이 벌렁거렸고 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은 엄마와 변호사이모 덕에 수업을 모두 재낄 수 있었지만 내일은 아무래도 학교에 가야겠지?


엄마는 내가 학교나 학원에 결석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했고 쓰러지더라도 학원에서 쓰러지는 게 엄마의 교육 철학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성실함에 대해서도 엄격한 분이었다. 나는 학교 갈 걱정에 눈이 감기질 않았다. 눈만 감으면 나를 둘러싼 놈들의 비웃는 눈빛이 떠올랐다. 새벽이 짙어질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든 걸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듯 했다. 아마 일이 해결될 즈음 들어올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못마땅해 하겠지? 집안 망신이나 시키는 구제불능이라고 여길까?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이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였다. 엄마의 눈물은 닫힌 방문 틈새를 비집고 흘러 들어와 방바닥을 적셨다. 아무래도 엄마가 문제의 그 동영상을 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봤겠지. 안 본 게 이상한 거겠지. 언제쯤 봤을까? 논리적인 엄마니까, 어제 내가 고백한 후에 바로 찾아봤을 게 틀림없었다.


내일 아침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엄마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저녁에 나를 안아주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까?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니 엄마가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던 것도 같다. 변호사이모도 친절했지만 나를 보는 눈빛에는 연민이 가득했던 것도 같다. 모두 그 동영상을 봤기 때문이겠지.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밖으로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그러면 내일 일어나서 엄마를 보지 않아도 될 텐데. 이대로 눈을 감은 채 지구가 멸망했으면, 북한이든 중국이든 미사일을 쏴서 전쟁이 터졌으면, 서울에 지진이 났으면, 이 아파트가 폭삭 무너졌으면. 끝도 없는 바람이 머릿속을 좀먹었다.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침 해는 유난히 일찍 떠올랐다. 


엄마를 어떻게 보지? 엄마는 나를 더럽다고 생각하겠지? 날 이상한 놈이라고 그 지경이 되도록 아무 말도 못하는 멍청하고 한심한 놈이라고?


나는 이불을 들추지도 못하고 잠든 척했다. 이불이 들썩일까봐 숨을 최대한 죽이고 발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머리카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잔뜩 힘이 들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고 호흡은 가빠졌지만 참았다. 그런 건 현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의 꾸짖는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평생 이불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레고르 잠자처럼 흉측한 벌레로 변신했다면 좋았으리라. 그랬다면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괴로움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그레고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을 무섭고 징그럽게 여기며 방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엄마를 바라보던 그레고르의 마음은? 이대로 눈을 감고 죽어버리고 싶은 내 마음과 비슷했겠지?


그레고르를 징그러운 바퀴벌레로 만든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카프카 자신도 나처럼 따돌림을 받았으려나? 혼자만 이상한 벌레로 취급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았던 걸까. 그 작가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경험이 없었다면 그런 대단한 소설을 쓰지는 못했을 테니까.


문득 수업시간에 배웠던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이 떠올랐다. 수업 중 국어쌤이 수능이나 논술에 종종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도 덩달아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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