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논술. 과연 내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면서 수능을 볼 수 있을까? 무사히 수능을 보고 논술까지 치를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할까? 동영상 때문에 이미 내 신상은 퍼질 대로 퍼졌을 텐데. 이대로 매장 당할 수도 있었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더라도 소문은 여기저기 나 있겠지. 거기서도 따돌림을 받으면? 그땐 어디로 가나. 차라리 자퇴를 하고 싶었다.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을 치르면 잘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동의하지 않겠지. 엄마도 달가워하진 않을 테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아, 정말 학교 가기 싫다.
그런데 이상하다. 엄마는 매일 아침 6시만 되면 칼 같이 내 방문을 노크했다. 깨울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 걸까. 그게 더 불안했다. 엄마는 정해진 규칙을 깨는 걸 무척 싫어했으니까.
엄마는 언제 일어날까? 새벽 늦게까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래서 늦잠을 자는 걸까. 엄마가 늦잠을? 그럴 리가. 엄마는 늦잠을 자는 법이 없는 분인데. 그럼 왜?
나는 귀를 바짝 세워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조용했다. 엄마가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재빨리 몸을 반대로 돌렸다. 오랫동안 한쪽으로만 누워 있는 바람에 매트리스와 맞닿은 곳은 아예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다시 밖의 상황을 예민하게 살폈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기척은 없었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엄마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문을 잠글까?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이불을 살짝 내려 눈만 나오게 했다. 방문 문고리가 보였다. 볼록 튀어나온 것만 살짝 누르면 되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일어나 방문을 잠그는 사이 엄마가 문을 열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수많은 뇌세포가 당시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며 나를 괴롭혔다.
잠글까? 말까?
이 단순한 명제를 고민하며 잠깐이지만 식은땀까지 흘렸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엄마를 마주할 상황은 ‘끔찍함’ 그 자체였으니까. 최근 엄마의 키를 앞지르긴 했지만 눈높이가 서로 비슷했기에 엉거주춤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는 상상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뇌가 만들어낸 상상 때문에 빨리 뛰던 심장이 가까스로 차분해지자 이성적으로 사고가 가능해졌다.
엄마는 내가 방에 있을 때는 항시 노크를 했고 방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함이었고 사춘기 아들을 위한 배려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엄마가 언제든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나를 책망하고 꾸짖을 것만 같았다.
너한테 정말 실망이다. 왜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하고 있었니? 네 아버지도 집에 안 들어오잖아. 모두 다 너 때문이야. 넌 왜 이렇게 애가 모자라니?
엄마의 질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눈을 꼭 감았지만 엄마의 화난 얼굴이 지워지질 않았다. 아무래도 엄마를 만날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누워만 있어서는 답이 안 나왔다. 문을 잠그고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있는 게 나을 터였다.
나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밖의 동태를 살폈다. 아무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질 않았다. 나는 이불을 살짝 내리고 온몸에 날카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은 후 후다닥 움직였다. 다섯 걸음만 걸으면 바로 문인데도 그 거리가 학교 운동장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문까지 달려가 조심히 문고리의 꽁다리를 꾹 눌렀다. 그제야 배꼽 아래에서부터 참고 있던 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몸의 긴장이 쭈욱 빠져나갔다.
안심이었다. 엄마가 억지로 문을 열지 않는 한 나는 혼자였고 자유였다. 그 누구에게도 처참한 내 꼬락서니를 내보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