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엄마의 노크 소리에 무심코 일어나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딸깍’ 소리가 나자 후다닥 정신이 들었다.
문이 왜 잠겼지? 뭐야. 나 잔 거야? 나 진짜 노답이다. 내가 지금 뻔뻔하게 엄마한테 낯짝을 들이밀 상황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이미 열어버린 문짝을 도로 닫을 수도 없었다. 학교에는 가야 했으니까. 엄마가 불미스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나는 얼굴을 푹 숙이고 욕실로 향했다.
“재우야, 잠깐 이리 와봐.”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엄마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를 보지 않고 식탁만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의 눈을 보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손끝이 찌릿해졌다. 나는 엄마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때 노는 애들처럼 머리카락이라도 있었으면 얼굴을 가릴 수 있었을 텐데. 내 짧은 머리카락은 이마조차 가려주질 못했다.
“재우야, 당분간은 학교에 안 가도 돼. 일 처리 될 동안 집에서 공부해. 과외 선생님 불러줄 테니까. 그리고 기말시험은 학교에서 혼자 받을 수 있도록 할 거니까 내신 걱정 말고. 어차피 이번 기말만 치르면 졸업이니까, 졸업 때까지 학교 안 가도 될 거야. 그리고….”
엄마가 말을 멈추자 집안 가득 적막이 깔렸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말을 멈췄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동영상 얘기겠지. 전신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 변호사이모가 알아보니까, 그런 거 전문적으로 삭제해주는 업체가 있대. 거기서 전부 다 삭제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거 찍은 애랑 그거 올린 애들 모두 핸드폰에서 동영상 없애버릴 거고. 그니까 재우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니? 재우 네가 원한다면 심리상담치료 알아볼게.”
엄마의 목소리에서 불편한 기색이 읽혀졌다. 아마도 엄마는 싫겠지. 자식을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한다는 게 내키지 않으리라.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
“다행이다.”
엄마가 안도했다. 내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씁쓸함이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어쩌면 엄마는 아버지에게 아들의 정신과 상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바에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바라는 바에 응해줘야 더 이상 내가 귀찮아지지 않을 테니까. 수시로 내 행동을 살피고 이상한 짓은 안 하는지 관찰당하는 것은 질색이었다. 감시당하는 기분. 그건 학교에서 그 녀석들한테 당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 씻고 와. 밥 먹고 공부하렴. 엄마가 오늘 과외선생님 알아보고 내일부터 오라고 할 테니까.”
나도 엄마를 끝까지 제대로 보지 않았고 엄마도 나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우린 서로를 피했다. 엄마도 알고 나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랄까.
이후 모든 조치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버지가 지닌 권력의 힘이 컸던지, 아니면 변호사이모의 실력이 좋았던 건지, 학교 일은 엄마가 말했던 대로 흘러갔다.
내가 아팠던 만큼 그들도 아프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 욕망보다는 수치심이 더 컸다. 그들을 아프게 하려면 직접 대면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자신의 아들은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다고 여겼다. 자신의 아들은 엄친아였으니까. 아버지는 계속 부재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