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가 내가 되는 일은 한순간이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어쨌든 그때(어쩌면 나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우는 자살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몇 번이나 생각했으니까.) 동우는 며칠 동안 학교를 안 나왔고, 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 관심 밖이었다. 며칠 후 등교한 동우는 나에게 대놓고 말했다. 도와달라고. 하지만 난 대놓고 동우를 지켜줄 생각이, 용기가 없었다. 다시는 머리 검은 동물에게 과대한 친절을 베풀고 싶지 않았다. 학교는 나 혼자 버티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찬 곳이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그 때문이었을까? 동우는 나의 거절을 신호탄 삼아, 그날 밤 그 동영상을 학교 웹사이트에 올렸다.
난 동영상이 올라갔단 사실도 모르고 보충수업을 들으러 등교했다. 그리고 마주쳤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과.
두려움은 현실이 되어 내 목을 졸랐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발뒤꿈치를 살살 간질였다. 등교하는 내내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그 눈빛. 내가 따돌림을 받을 때의 그 눈빛이었다. 그 불길한 기운은 종아리를 타고 목덜미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모든 게 분명해졌다. 내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왈칵, 두려움이 바짝 얼굴을 디밀었다. 내 자리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공포가 실재가 되어 나를 노려보았다.
어울리던 패거리 중 한 명인 연성이가 나에게 지분거렸다.
“변태쓰레기! 너 그동안 운동 좀 했나보드라? 알아봤더니, 너 이 새퀴, 전교 빵셔틀이라며? 근데 이 새퀴가 그동안 나랑 어울려? 이게 완전 죽을라고!!”
연성이의 주먹이 당황한 나의 빈틈을 노리고 재빨리 들어왔다. 내 정신은 붕괴 중이었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녀석의 주먹을 흘리고 덥석 연성이의 목울대를 움켜쥐었다. 연성이의 얼굴이 예전 나를 괴롭히던 패거리의 얼굴과 겹쳐졌다. 내 손아귀 안에 잡힌 사람은 더 이상 연성이가 아니었다. 악귀였다.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주변 구경하는 아이들이 어, 어, 하며 술렁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악귀는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버둥댔지만, 나는 손아귀를 놓지 않았다. 연성은 나에게 경동맥을 눌려, 얼굴이 점점 시퍼렇게 변했다. 그의 쌍둥이 형 연호가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안면에 가해진 얼얼한 폭력의 울림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연성이를 붙잡았던 손의 힘을 뺐다. 연성이의 목덜미에는 내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켁켁 대던 연성이는 호흡이 진정되자 쪽팔렸던지 더욱 화를 내며 내게 덤볐다. 연호도 연성이와 함께 맞섰다. 교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싸움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곧 교실은 싸움을 구경하려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팽팽히 당겨진 긴장감으로 교실은 터질 듯 했지만, 공포에 짓눌려 파닥거렸던 내 심장은 천천히 원상태로 복귀되고 있었다. 붕괴되던 머릿속도 차분히 가라앉은 반면 억눌린 감정은 폭발 직전이었다. 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차갑게 물었다.
“왜 이래?”
호흡이 정리되지 않은 연성이 대신, 연호가 대꾸했다.
“너 화면빨 잘 받더라? 너 그동안 우리랑 맞먹으니까 좋았냐? 서울 빵셔틀이 지방에 오면 짱 먹을 줄 알았어? 서울에서 셔틀이면, 여기서도 셔틀이야!”
연호는 아이들을 향해 과장된 눈짓을 하며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또 하나의 악귀였다. 나를 둘러싼 모든 아이들이 악귀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교실 가득 모여 있던 아이들 모두 그 동영상을 봤다는 것을. 얼굴이 달아올랐다. 수치심 때문이었다. 숨고 싶었다. 아무도 내 얼굴을, 내 그림자까지도 보지 못하도록.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칠 여지가 없었다. 주변을 꽉 매운 적대적인 눈빛 사이에는 송곳 꽂을 틈도 없었다. 남은 선택은 정면대결 뿐.
“우리 친구 아니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