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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Land] 기억을 잃어버렸다_8
  • 기사등록 2016-05-04 16: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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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지한 물음은 비웃음이 되어 돌아왔다. 그곳에 모인 모두가, 심지어 복도에서 까치발을 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비웃음은 내 귀를 찢고 내 진심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연성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쳤냐?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난 너 같은 변태새끼랑 친구 먹은 적 없는데? 니가 싸움 좀 하니까, 대충 데리고 다녀준 거야. 너 같이 눈빛 사나운 새퀴랑 누가 친구를 먹어~!”


그때 어디선가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맞아. 저 새끼 눈빛 열나 짱나. 완전 버려진 개새끼 같애. 옆에만 있어도 물어뜯을 것처럼. 열나 재섭써!”


여기저기서 재수 없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처음 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가 왜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봤는지, 왜 가끔 엄마가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엄친아가 아니었다. 나는 상처 입은 사나운 들개였던 것이다. 살아남으려 발악하는 사나운 개새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 착각이 얼마나 심했던가. 폭발 직전의 감정은 좀 전보다 더욱 빳빳하게 곤두섰다. 그때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던져졌다.


“야, 여기서도 한 번 해봐, 스트립쇼. 보니깐 완전 잘 하던데? 이왕이면 마스터베이션까지 보여주면 좋고! 그러면 앞으로도 친구해줄게. 대신, 매일 전교에 빵 돌려라. 푸하하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가까스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쳤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나를 비웃는 아이들 모두를, 정말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난 폭주해버렸다. 연성이나 연호가 아닌, 모두를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다. 누가 맞는지, 누가 날 때리는지, 남에게 타격을 주는지, 내가 타격을 받았는지, 아무것도 분간이 가질 않았다. 무아지경이었다. 달아오른 얼굴처럼 머릿속도 내 주먹도, 내 마음도 상처로 붉어졌다.


얼마나 그렇게 정신을 놓고 싸웠을까. 처음엔 들리지 않았지만, 내 무의식을 파고드는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채자, 그제야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내 주위에 있던, 또는 나를 공격했던 아이들은 엉망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 손에는 너덜너덜한 의자가 들려 있었다. 교실 뒷문 옆에 걸려 있던 전신거울에는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낸 채 핏발 선 눈으로 거울을 노려보는 들개 한 마리가 보였다. 그것이 진정 나의 모습이었을까.


다음 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며칠 동안 엄마는 나 몰래 울었다. 엄마의 눈물이 내 방을 적실 때마다 나 또한 울었다.


그날의 사건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활자화 되지는 않았다. 모두 아버지의 능력이었다. 그 지역에서는 유래가 없던 큰 사건이라, 인터넷에라도 오를 만 했지만, 전혀 오르지 않았다. 다친 아이들에게는 모두 치료비 명목의 제법 큰돈이 지급되었고, 변호사를 통해 기사화 하지 않겠다는 합의 각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인터넷에 나돌던 동영상은 수십 명의 사람을 고용해 모두 찾아내 삭제를 했다(하지만 모른다. 또 언제 튀어나올지. 인터넷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니까.)고 한다. 그렇게 내 인생의 오점은 타인의 손가락에 의해 삭제됐다. 하지만 내 마음속 상처까지는 삭제할 수 없었다.


결국 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거창한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다. 과연 내 마음은 전과 같이 온전해질 수 있을까? 난 매일 되돌아본다, 치유라는 이름으로. 매일 상담사에게 그날의 상처를 헤집어 보여준다.


난 잊고 싶다. 더 이상 들추고 싶지 않다. 제발 치유를 빌미로 내 상처를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며칠 전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쪽이 더 수월하고 편했다. 억지로 소리를 내어 그날의 아픔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덧붙이는 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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